살인의 도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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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물 속을 걷는 듯한 짙은 안개 속을 다급히 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격한 호흡을 내뱉는 것으로 보아 이미 한참을 달려왔던 것 같다.

 

어쩌면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일지도.

 

누군가에게 쫓기는 모양인지 달리는 와중 뒤를 돌아보던 여자는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평소 같으면 금방 일어났을테지만 좀처럼 여자는 일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기만 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땅을 짚고 네 발로 기다시피 하며 여자는 혼잣말로 애원했다.

 

그 절실한 목소리가 들렸는지 안개를 뚫고 누군가 여자에게 다가왔다. 여자는 그 사람에게 엉금엉금 기어갔다.

 

“도와주세요! 그 자가 쫓아와요…!”

 

여자는 그 사람의 바짓단을 붙잡고 흔들었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를 죽이려고… 빨리 경비대에…!”

“경비대가 오면 뭐가 달라져?”

 

뱀처럼 쉭쉭대는 목소리에 바짓단을 흔들던 여자의 손이 굳어버렸다. 여자는 주체할 수 없이 떨며 천천히 그 자를 올려다봤다.

 

잠시 후, 두 명의 경비병이 안개를 헤치며 나타났다.

 

앞에 있던 경비병이 무언가를 보고 놀라 뒷걸음질치며 다른 경비병과 부딪혔다.

 

“젠장… 젠장…! 호각 불어! 빨리!”

“이런 썅! 저게 뭐야!”

“빨리 호각 불라고!”

 

삐이이이이이이이ㅡ익ㅡ!

 
* * * *
 

조사관 라파엘라와 벨레드가 아이니 시에 들어선 것은 차가운 안개가 자욱한 늦은 아침이었다.

 

안개를 헤치며 나간 조사관들은 시의 입구임을 알리는 이정표 앞에 섰다.

 

하얀 안개 속에서 더 하얗게 빛나는 얼굴로 라파엘라는 무표정하게 이정표를 바라봤다.

 

“행복한 아이니 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벨레드가 이정표를 소리내어 읽었다.

 

그의 목소리는 입 밖을 나오자마자 안개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행복한 아이니 시라니. 웃기네요.”

 

재작년에 성년이 된 곱슬머리 청년 벨레드는 소년 같이 웃었다.

 

그러나 라파엘라는 마주웃는 대신 몸을 휘감는 축축한 안개를 떨쳐내려는듯 코트자락을 추스를 뿐이었다.

 

그녀가 머리를 흔들자 습기를 잔뜩 머금어 어깨까지 내려온 옅은 갈색 머리칼이 무겁게 출렁였다.

 

“행복한 아이니 시라.”

 

그들은 시로 들어섰다.

 

“저… 정지! 이방인은 정지선에 멈추시오!”

 

안개 너머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다급하게 외쳤다. 라파엘라는 앞서가던 벨레드의 어깨를 잡아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깨지고 금이 간 포석을 가로질러 조악한 흰색 선이 그려져 있었다.

 

“거… 거기 그대로 서시오! 석궁을 겨누고 있으니 하… 한 발짝만 움직여도…….”

“안 움직일 테니 안심하세요.”

“이방인은 신분과 방문 목적을 밝히시오!”

“저는 조사관보 벨레드입니다. 옆에 서있는 아가씨는 조사관 라파엘라구요. 최근 이 지역에 연달아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사건의 조사를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조사관? 지금 조사관이라고 했습니까?”

 

안개 너머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조사관이 맞습니까?”

“맞는지 아닌지는 직접 와서 보세요. 안개 때문에 얼른 들어가고 싶은데요.”

 

뭔가를 치우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경비병이 안개를 뚫고 나타났다. 모두 갑옷과 장검으로 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들은 검 끝을 조사관들에게 향한 채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조사관의 증표를…….”

 

벨레드는 경비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트 안주머니에서 황제의 인장이 찍힌 패를 꺼내어 보였다.

 

증표를 확인한 경비병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검을 거뒀다.

 

“오… 신이시여……. 드디어 오셨군요. 죄송합니다. 최근 일대 검문을 강화한 상태라… 이런 시기에 시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무조건 의심하고 보기 때문에… 아무튼 죄송합니다.”

 

경비병은 거듭 사과를 했다. 지금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던 라파엘라가 짜증스럽게 경비병의 말을 끊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면 안될까요? 좀 추워서.”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두 분십니까?”

 

경비병이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시 외곽을 힐끔거렸다.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라파엘라가 빤히 쳐다봤다.

 

“제국 특전대가 온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아닙니다. 가시죠!”

 

경비병은 말을 얼버무렸다. 기껏 수도에서 왔다는 게 희멀건한 샌님 둘이라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다.

 

안개에 뒤덮힌 아이니 시를 걸어가며 경비병은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조사관들이 이미 수도에서 파악한 내용들이었다.

 

사람이 죽고, 다음날 아침을 보지 못하고, 죽고, 실종되고,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되고, 천하의 나쁜, 천인공노할.

 

석궁과 장검으로 중무장한 수많은 경비병들이 그들을 스쳐갔다. 하나 같이 어둡고 회색빛이었다.

 

“여기 경비대 규모가 어떻게 되나요?”

“어… 대략 삼백 명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도시 크기에 비해 경비대가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요?”

“경비대장님께서 예비역들을 모조리 소집했거든요.”

“경비대장이요? 예비역 소집은 행정관의 권한일텐데요? 국경에 인접한 곳이라 비상시에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런 것까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짙은 안개 탓에 도시는 일부만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모든 문과 창이 굳게 닫힌 채였다.

 

그러나 라파엘라는 닫힌 창 틈으로 그들을 훔쳐보는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감각’에 조금 집중했다. 그러자 집 안에서 소곤대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수도에서 온다는 그 조사관들인가?’

‘기껏 보낸 게 쟤네 둘이야? 그냥 어린애들 같은데.’

‘특전대는 왜 안 온 거야?’

‘누가 됐든 빨리 끝내줬으면.’

‘지금껏 아무런 조치도 안 해주더니.’

‘여자 예쁘다.’

‘조사관이라고 표적이 되는 거 아냐?’

‘어쩌면 오늘 보는 게 마지막일 수도 있겠군.’

 

불신과 원망이 뒤섞인 숨죽인 대화들이었다.

 

공포와 혼란이 안개처럼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조사관님들이 도착하셨습니다!”

 

행정관실에 있던 두 명의 남자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